- 바로잡아 고치는 대신 변명•잘난체•미화
- 아랫사람은 직언, 위정자는 경청하는 큰 귀 가져야
'부지깽이로 맞은 며느리 홍두깨로 팬다'는 속담이 있다. 엄한 시집살이에 진저리가 난 며느리는 자신은 절대로 며느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대부분의 시집살이 많이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더 가혹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것을 빗댄 속담이다.
춘추좌씨전(僖公24년)에도 비슷한 의미의 '尤而效之 罪又甚焉(우이효지 죄우심언)‘이란 말이 있다. 남의 허물을 책망하면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죄중에서 가장 큰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일은 우리 정치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전 정권의 잘못된 정책이라면서도 그보다 못한 정책을 내놓으며, 사사건건 전 정권 탓만 해대는 정부와 그 위정자가 좋은 예이다.
송사 범순인전(宋史 范純仁傳, 2020.12.14. 33회칼럼 참조)에는 이러한 인물을 경계하는‘人雖至愚 責人則明 雖有聰明 恕己則昏(인수지우 책인즉명 수유총명 서기즉혼)’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남을 꾸짖을 때는 밝고, 똑똑한 사람도 자신을 용서하는 데에는 어두운 법이다’는 뜻이다.
우리들은 보통 잘못을 저지르고도 인정하는데는 인색하다. 아니 그 정도는 약과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은 커녕 숨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잘못에 대해 변명하거나 잘못을 덮으려 오히려 미화하기에 힘쓴다.
그래서 자하(子夏)는 논어 자장(子張)편에서 ‘小人之過也 必文, 소인지과야 필문,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럴듯하게 꾸며대려한다’라고 했다.
주자(朱子)는 논어집주에서 ‘文飾之也 小人憚於改過 而不憚於自欺 故必文以重其過 (문식지야 소인탄어개과 이불탄어자기 고필문이중기과)’라고 했다. ‘소인은 허물을 고치는데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데엔 꺼리지 않으므로 언제나 그 허물을 꾸며가며 거듭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자하 또는 장자(莊子) 등의 말을 더해 문과식비(文過飾非)' 또는 '문과수비(文過遂非)'라는 성어가 만들어졌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까지 꾸며댄다'는 뜻으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은 커녕 숨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외면하고 도리어 잘난 체까지 한다는 의미다.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잘못은 저지를 수있다. 다만 변명과 거짓으로 꾸며대는가 아닌가에서 소인과의 차이가 난다. 난사람이라면 잘못을 고치고 나가는데, 못난 사람은 그대로 밀어부친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일이 필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크게 신경쓸 일도 아니지만, 위정자 특히 최고의 위정자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바로 이럴 때 참된 신하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참된 신하라면 군주의 허물은 헤진 옷을 기워주듯 하고, 좋은 것을 버렸다면 주워 다시 쓰게 해야한다. 이를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서는 보과습유(補過拾遺) 또는 습유보궐(拾遺補闕)이라는 성어로 표현하고 있다. 참된 신하라면 '군주의 잘못은 바로 잡고 결점은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주가 틀렸으면 '아닙니다, 안됩니다'라 말할 수있는 신하가 반드시 필요하고, 윗사람이 맞았으면 '맞습니다, 그렇습니다'라 하는 아랫사람이 필요하다.(君必有弗弗之臣 上必有諾諾之臣 군필유불불지신 상필유낙낙지신)." 묵자 친사(墨子 親士)편에 나오는 말이다.
서양에 '표범은 제 무늬를 바꿀 수없다(A leopard cannot change his spots)'는 속담이 있지만, 참된 신하라면 주군의 잘못된 무늬는 바꿀 수있어야 한다. 아니, 반드시 바꿔줘야 한다.
타인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말하기(Speaking), 읽기(Reading), 쓰기(Writing), 듣기(Listening)가 필요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의사소통 과정에서 실제 사용되는 시간은 쓰기 9%, 읽기 16%, 말하기 30%, 듣기 45%라 한다. 타인의 말을 들어만 주어도 의사소통의 기본은 한 셈이 된다는 말이다.
Listening은 Hearing처럼 그냥 듣기만 하는게 아니라,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의미로 '경청(傾聽)'이라 할 수있다. Hearing는 단순히 물리적이고 수동적이지만, Listening은 정신적이고 능동적이어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깊은 주의력을 동원해야 하며, 상대방이 말로 표현한 메시지는 물론이고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속내까지 읽어낼 수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는 물론 마음으로 들어야하며,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는 본인의 정성과 노력이 따라야 그의 속내까지 읽을 수가 있다.
세종이 1430년(세종 12) 공법(貢法)이라는 세제개혁을 추진할 때였다. 관료부터 하층 농민에 이르기까지 무려 17만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과반수 이상이 찬성했다. 그러나 그대로 밀어붙이지도 않았고, 고위 신료들의 끈질긴 반대에도 중도에 포기하지도 않았다.
일정기간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서 반대자들까지도 수긍할 수있는 대안을 만들어냈다. 이는 세종의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중간에 적당히 그치는(適中而止 적중이지)' 평소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평소 어전회의에서도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며 신하들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고,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며 중간에 끼어들고 싶은 유혹을 참고 기다렸다. 신하들이 충분히 속내까지 드러내 좋은 의견을 내놓으면 그때서야 자신의 소견을 더했다. 이런 세종의 노력 덕분에 어전회의는 창의적인 의견이 쏟아져 나오는 아이디어 뱅크가 됐다.
위정자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커야 멋진 인물이 된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위정자의 귀가 작아서는 민심을 제대로 들을 수없기 때문이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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