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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15) 불취무귀(不醉無歸) 패령자계(佩鈴自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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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15) 불취무귀(不醉無歸) 패령자계(佩鈴自戒)
  • 이형로
  • 승인 2024.06.1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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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임금, 당파반목 해소 수단으로 술자리 활용
- ‘사회성의 지표’ 두주불사(斗酒不辭)…이젠 부정적 이미지
- 버릇 고치기 쉽지않아…허리에 방울 차고 울릴때마다 언행 조심
경기도 수원 지동시장 입구에 있는 정조의 불취무귀(不醉無歸)상과 예당(藝堂) 김을섭의 글씨. 정조가 과거시험에 합격한 유생들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한 말로 ‘취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술자리는 정조의 당파대립 해소 노력의 하나였으며, 불취무귀는 백성 모두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흠뻑 취할 수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토로로 풀이된다. (사진=인터넷 캡쳐)

얼마전 한 모임에서 돌아가며 건배사를 하는데 마땅한 건배사가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공식적인 모임이 아닌 가벼운 술자리에서도 건배사를 심심찮게 한다. 이럴 때를 위해 몇 가지 머릿속에 넣어두었으나 막상 써야 할 때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걸 외웠다 쓰고 싶을 때 꺼내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역대 임금 가운데 건배사로 유명한 인물은 단연 정조가 꼽힌다. 1792년 어느 봄날 정조는 그해 과거시험에 합격한 유생들을 창덕궁으로 초대했다. 희정당에 들어선 유생들은 한쪽에 가득 쌓인 술통을 보고 당황했다. 48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런 분위기에서 임금을 만날 줄은 몰랐다.

궁궐 내에 있는 술이란 술을 모두 모아놓은 자리에서 정조가 입을 열었다. "옛사람들은 술로 취하게 한 뒤에 그 사람의 덕을 살펴본다고 하였다. 오늘 '취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니', 모름지기 각자 양껏 마시도록 하라."(정조실록16년 3월2일)

몇 차례의 환국(換國)정치를 겪으면서 붕당들 사이의 불신은 극에 달하여 주요 국책사업이 무산되는 일이 빈번했다. 당시 당파간의 반목이 얼마나 심했으면, '당색이 다르면 조문(弔問)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든 벌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할 필요를 느낀 정조는 부득이 그런 술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취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돌려보내지 않는다(不醉無歸 불취무귀)'라는 정조의 이 말은 사실 심각한 붕당간의 대립을 완화해 보려는 고육지책이었지만, 이후 정조의 건배사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옛기록을 보면 우리 조상들의 음주문화도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도성의 남녀들이 떼지어 술을 마시는데 술자리를 마련하면 반드시 음악을 베풀게 되고 해가 저물어야 돌아갔다'(세조실록 3년 4월22일)고 하니, 2차•3차를 하고도 모자라 노래방까지 가는 지금의 풍습과 많이 닮았다.

필자의 술 습관을 보더라도 예전에 조상들이 인사불성으로 마시던 DNA가 아직도 도태되지 않은 듯하다. 50년 지기중에 기분이 나쁘면 일찍 집에 가서 잘지언정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친구가 있다. 그런 날은 술을 마셔봐야 더욱 기분이 나빠진다는 이유에서이다. 술로 풀려는 필자와는 다른 좋은 습관이어서 지금까지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버릇이라는게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옛사람들도 자신의 나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비자 관행편에 ‘西門豹之性急 故佩韋以自緩 董安于之心緩 故佩弦以自急 서문표지성급 고패위이자완 동안우지심완 고패현이자급)’이라는 말이 있다. ‘서문표는 성질이 급하므로 부드러운 가죽 끈을 차 스스로를 느슨하게 하고, 동안우는 마음이 느긋하므로 활시위를 차고 스스로를 긴장시켰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부드러운 가죽과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닌다'는 뜻의 '패위패현(佩韋佩弦)' 혹은 '위현지폐(韋弦之佩)'란 성어가 유래했다. 자기자신의 성격을 고치는 경계의 표지로 삼음을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 주요 공직자의 프로필에 자주 등장한 斗酒不辭(두주불사)는 호방함과 사교성의 지표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부정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패령자계는 허리에 방울을 차고 몸을 움직여 소리 날때마다 나쁜 언행을 고치려했다는 뜻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조선 선조 때 좌찬성을 역임한 이상의(李尙毅, 1560~1624)는 어려서부터 매우 경솔해 한곳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를 못하고, 말할 때도 실수가 잦아 그의 부모는 늘 그의 행동거지를 근심하고 꾸짖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작은 방울을 허리에 차고 나타났다. 몸을 움직여 방울 소리가 나면 그때마다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고자 함이었다.

앉고 누울 때도 방울을 풀지않아 당장은 시끄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더니 중년이 되어서는 방울 소리가 더욱 잦아들며 신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후 경박한 자식들의 버릇을 고치려는 사람들은 그의 예를 모범으로 삼게됐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재륜(鄭載崙, 1648~1723)의 야사집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에 실린 일화로 여기에서 '방울을 차고 스스로 경계하다'라는 뜻인 '패령자계(佩鈴自戒)'란 성어가 유래했다. 스스로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뜻하게 되었다.

태종은 개국한지 30년도 채 되지 않은 조선왕조를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후계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세자 양녕은 계속되는 비행과 과오로 일찌감치 태종의 눈밖에 나 충녕(후에 세종)으로 전격 교체하기에 이른다.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태종은 충녕의 술버릇에 주목했다.

"중국의 사신을 대하여 주인으로서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하여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는가.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忠寧雖不能飮 適中而止 충녕수불능음 적중이지)'. 또한 그의 아들 가운데 쓸만한 녀석이 있다. 효령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 또한 불가하다. 충녕이 대위(大位 임금자리)를 맡을 만하니 나는 그를 세자로 정하겠다."(태종실록 18년 6월 3일)

태종은 충녕이 '술을 마시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適中而止 적중이지)'라며, 그래서 세자로 정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태종은 지나치게 마셔서 실수가 잦은 양녕,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해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는 자리에 부족한 효령과는 달리, 충녕의 이른바 '중용의 음주'를 높이 샀던 것이다.

얼마전까지 주요공직에 오른 사람이 술을 좋아한다면 프로필에 '말술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두주불사(斗酒不辭)'라는 말을 붙이곤 하였다. 그때만 해도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느냐가 그 인물의 사회성을 알려주는 지표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사는 별로 달갑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문득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난 윤석열 대통령의 평소 술자리 건배사가 궁금하다. 필자도 외워놨다 기회가 되면 한번 써먹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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