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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17) 완월장취(翫月長醉) 차망우물(此忘憂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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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17) 완월장취(翫月長醉) 차망우물(此忘憂物)
  • 이형로
  • 승인 2024.07.1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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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연명의 술 예찬 ‘온갖 시름을 잊게 해주는 것’
- 오랜 벗과 달 아래 정 나누며 기울이는 술 한잔…삶의 즐거움
수월 권상호의 '翫月長醉(완월장취)' 작품. '달을 즐기며 오랫동안 흠뻑 취한다'라는 뜻이다. 산수 좋은 곳이 아닌 서울 빌딩숲 사이로 보이는 석양을 배경으로 벗과 정을 나누며 주고받는 농익은 술 한잔은 삶의 즐거움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이형로)

오늘은 친구네로 막걸리 마시러 가는 날이다. 매년 봄가을 적어도 두차례 그의 사무실 건물에 멋지게 꾸민 '하늘정원'에서 해질녘에 친구들과 막걸리모임을 했는데, 작년에는 서로 바빠선지 한번을 못했다. 올해는 이러구러 봄을 보내고 오늘에서야 모임을 갖게 되었다. 

비록 꽃피는 봄은 아니지만 여름날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을 바라보며 잔을 기울이는 것도 괜찮다. 친구들이 곁에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랴. 친구와 즐거운 술자리라면 항상 떠오르는 시가 있다. 조선 영조 때 대제학을 지낸 이정보(李鼎輔, 1693~1766)의 시조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翫月長醉) 하려뇨 

'완월장취'는 '달을 즐기며 오랫동안 흠뻑 취한다'라는 뜻으로, 翫(완)자는 '즐길 완(玩)'자의 원래 글자다. 예전의 그럴듯한 술자리라면 봄꽃이 만발한 산과 들 그리고 계곡의 물소리가 빠지지 않겠지만, 콘크리트 빌딩숲에 지어진 정원이면 또 어떠랴. 이정보가 읊었듯이 꽃과 달과 벗 그리고 술이 있다면 어디든 충분하다. 게다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은 술이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정보에게는 꽃과 달 그리고 벗이 중요한 술 마실 이유요 핑계였다. 좋은 술이 생기면 벗과 꽃나무 아래서 달을 감상하며 밤늦도록 취하고 싶다하지 않는가. 이 얼마나 좋은 핑계인가. 아내에게 상가 조문(죽은 사람 또 죽이며) 핑계로 구차하게 마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에 주선(酒仙) 이태백이 있다면 고려에는 그에 필적할만한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있다. 삼혹호는 거문고와 술 그리고 시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규보는 일찍부터 문재(文才)를 드러냈지만 과거에 몇차례 낙방했다. 23세에 급제한 후 주변의 추천과 자신의 구직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신정권하에 바로 관직에 나가지 못한 그는 부친상을 계기로 '백운거사(白雲居士)'라 스스로 호를 짓고 천마산에 은거했다. 

그는 낙담하지 않고 나름 충실하게 살아가려 하였다. 시와 술과 거문고를 좋아해서 삼혹호라 하였으니, 술이 없으면 시를 짓지않고, 시를 핑계삼아 술을 마셨다. 그는 평생 8000수의 시를지었다 전해지니 적어도 8000번 넘게 술을 마셨지 않았을까 싶다.

도연명은 술을 가리켜 '此忘憂物(차망우물)'이라고 예찬했다. 온갖 시름을 잊게 해주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친구, 직장동료들과 나누는 술잔으로 일상사의 피곤함과 걱정을 잠시나마 씻어내는 것에 비춰보면 '차망우물'은 아주 적절한 표현이듯 싶다. (사진=인터넷 캡쳐)

그는 술을 좋아하다 보니 가는 세월이 아까웠다. 왜냐하면 그만큼 술 마실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이런 심정을 술 한잔 거나하게 마시고 친구 전이지(全履之)에게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日上時遮擁金烏拉翼墜(일상시차옹금오납익추)
日匿處牽挽羲和使沈醉(일닉처견만희화사침취)
是時日未行(시시일미행)
留待羲和醒酒烏生翅(유대희화성주오생시)'

‘해 뜰때 금오를 잡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해 질때도 희화를 술에 잔뜩 취하게 만들 참이네/이렇게 하면 해도 그만 멈추고/희화가 술에 깨고 금오가 날개가 나도록 기다리겠지' 

금오(金烏)는 금까마귀로 태양을 상징하며, 희화(羲和)는 중국 신화속 인물로 해를 싣고 마차를 달리는 사내다. 희화에게 술을 먹여 마차를 멈추게 해 시간을 잡아두고, 늘어난 세월은 술을 즐기려는데 문제는 술값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日換美酒醉倒放顚狂 問君能有許多錢(일환미주취도방전광 문군능유허다전)’이라고 묻는다. ‘날마다 좋은 술 꼭지 돌도록 마시고 싶은데, 우리 술 마실 돈이 자네에게 얼마나 있는가?

태양도 멈추게 하겠다는 이태백도 울고갈 배포에 견주면 호주머니 돈을 헤아리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정서인데, 이는 친구 사이에나 나눌 수 있는 대화다. 

그는 훗날 술 마시고 시 짓기 내기는 쓸데없는 짓이라고도 했으며 젊은 날에 지은 시 300수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의 시와 술에 대한 감출 수없는 사랑은 시 '우음(偶吟, 술 마시고 우연히 읊다)'에 강렬히 드러나 있다. 

無酒詩可停 (무주시가정, 술 없으면 시도 내키지 않고) 
無詩酒可斥 (무시주가척, 시가 없으면 술도 시들해) 
詩酒皆所嗜 (시주개소기, 시와 술 둘 다 즐기고 있으니) 
相値兩相得 (상치양상득, 시와 술이 만나야 서로 어울리네)
信手書一句 (신수서일구, 손 가는 대로 시 한구절 짓고) 
信口傾一酌 (신구경일작, 입 당기는 대로 한잔 술 기울이니) 
奈何遮老子 (내하차노자, 어찌하여 이 늙은이가)
俱得詩酒癖 (구득시주벽, 시벽과 주벽을 함께 가졌나)

이처럼 이규보도 그럴듯하게 시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라 핑계대며 술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술이 없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데야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오늘은 시회(詩會)와 같은 고상한(?) 모임은 아니지만, 오랫만에 친구들을 만나 안부묻고, 도연명이 술을 ‘此忘憂物(차망우물, 온갖 시름을 잊게하는 것)'이라 했듯이, 술잔을 나누며 시름을 잊고 시답잖은 대화일망정 즐겁게 나누면 될 일이다. 평소에 점잔빼던 친구도 오늘만큼은 '한잔 들어가면 말이 많아질테니(酒入舌長, 주입설장)' 이 또한 즐거움 아니겠는가. 장마철일지라도 상관없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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