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차별, 임금차등, 성평등 제약하는 관습과 문화 등 아직 과제 많아
백년전쟁은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도 19세기~20세기 중엽까지 세기의 전쟁을 겪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시골마을 출신의 스무살도 되지 않은 처녀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베트남의 백년전쟁 시작은 프랑스와 미국과의 전쟁이었다, 서막은 프랑스가 무역과 선교 목적으로 인도차이나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 1930년대 민족주의운동 본격화하면서 여성의 사회참여 늘어
베트남의 응웬(Nguyen)왕조는 프랑스의 내정간섭에 대한 저항으로 선교사들을 처형하였다. 나폴레옹3세는 자국의 선교사 처형을 베트남 침공의 기회로 잡았다. 결국 1880년대에 베트남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프랑스 지배기에 베트남 여성들이 특별히 저항한 활동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베트남의 상류가문은 딸을 유럽 남성들에게 적극적으로 시집보냈다.
유럽 남성과의 결혼은 베트남의 상류층 가문 여성이나 상류층 여성이 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었다. 유럽 남편이 귀국하면 고향에 남겨진 여성은 베트남 사회의 주류로 등장했다.
결과는 냉소적이었다. 유럽 남성들은 동아시아 여성들을 ‘아름답지만 정숙하지 않고, 순결에 관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남성적 관점일 뿐이다. 가정이 있는 유럽 남성이 인도차이나에 와서 현지여성과 결혼하고, 자녀도 낳았다.
유럽 남성의 책임은 어디로 갔는가? 필자는 오히려 베트남 여성들의 강인한 DNA를 칭송하고 싶다.
1930년대는 베트남의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여성의 사회참여도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 베트남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은 가정, 어머니란 제한된 영역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소설속의 여성들은 강인한 여성상이었다. 베트남 여성노동조합총연맹은 여성의 이익을 주장했고, 유급 출산휴가, 평등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했다.
프랑스, 미국과 치른 두 차례의 인도차이나 전쟁(1945~1975)에서 베트남 여성은 한(漢) 제국에 대항했던 쩡 자매와 마찬가지로 간호사, 물자배달, 마을순찰대, 정보·선전요원으로 활동했고 입대하여 직접 전투에 참여하거나, 지하에서 저항군의 역할도 수행했다.
베트남 여성은 외국의 점령세력에 대항하여 조국 독립투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전쟁에 참여한 여성이 늘면서 베트남 정부는 여성의 권위, 사회참여를 대폭 확대시켰다. 1967년 결의안은 공공부문 일자리에서 여성참여를 최소 35%, 교육부문 일자리는 50~70%까지 여성에게 할당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조치는 1970년에 들어와 모두 실현되었다.
◆승전, 통일로 남성 경제활동 복귀하며 상황반전…여성 사회참여 줄어
베트남은 1975년 통일을 이루었다. 남성들이 경제활동에 복귀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는 급격하게 줄었다.
1986년 가정법은 출산휴가를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으나, 1988년 각료회의에서 고용주의 불만을 받아들여 출산휴가를 4개월로 축소하였다. 현재 베트남 여성들은 6개월의 출산휴가를 즐기고 있지만, 이는 1930년대와 동일한 수준이다.
외형에서 드러난 베트남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상당히 높아 보인다. 그러나 법의 관점에서 성평등 현실을 보면 여성에게 녹녹한 상황이 아니다.
현대 여성은 이중의 압력을 받는다. 정부는 여성에게 경제·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라고 말한다. 사회·관습으로는 여성은 가정사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집안일과 바깥일(경제·정치)을 다 잘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엄청난 부담이자 족쇄이다.
과거에는 자녀를 낳으면 그냥 키우면 되었다. 지금은 건강하고, 똑똑하게 키워야 한다. 좋은 음식, 경쟁에서 이기도록 좋은 학교도 찾아야 하고, 음악과 스포츠, 영어·수학 등 과외도 시켜야 한다. 자녀에게 들어가는 양육비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여성이 혼자 하긴 힘들다.
눈에 띄는 차별도 있다. 남성은 60세, 여성은 55세로 정년이 다르다. 5년 차이는 베트남 사회에서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장치에 다름 아니다.
고령화 대응을 위해 정년을 남성 62세, 여성 60세로 연장할 계획이지만 여전히 2년의 차별이 있다. 무슨 이유일까?
◆외형적으론 여성의 사회적 지위 높아보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녹치않은 상황
베트남의 성평등법(Law on Gender Equality)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을 남녀 간에도 완전하게 실현하도록 한 법이다.
성별을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안 된다. 젠더(gender)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특징, 지위, 역할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우리는 젠더를 간단히 ‘사회적 성’이라 말하며, 생물학적 성인 섹스(sex)와 구별한다.
성평등을 이야기할 때 젠더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모든 법적 장치 속에 젠더 개념이 녹아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베트남 사회가 진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완전한 평등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 대한민국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성평등법에는 6가지 기본원칙이 있다. 남녀는 사회와 가정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하며, 젠더 관점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
성평등 촉진과 모성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조치·정책은 젠더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젠더 주류화(mainstreaming)가 베트남 사회에 정착되도록 관련법을 지속 보완·발전시켜야 한다. 성평등 실천을 위해 기관, 조직, 가족, 개인은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원칙은 베트남 사회에서 성평등을 제약하는 모든 관습과 문화로부터 법과 제도적 장치로 강제, 강화할 때 실현될 수 있다. 엄격한 법적 기준에서 볼 때 현대 베트남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개선할 점이 너무나도 많다.
여성전문가들은 ‘남성이 여성의 가사를 돕는다(help), 남성이 가사의 일부를 분담한다(share)’는 말을 싫어한다. 가정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책임지는 공간이다. 남성이 가정 일을 더 많이 분담하면 할수록, 여성은 가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회적 경력을 닦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성평등을 위한 베트남 정부의 노력은 놀랄만했다. 2014년 베트남은 유엔이 15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가별 성평등지수에서 60위를 기록하였다. 아직 올라갈 숫자가 많이 남았지만 UN은 베트남의 성평등도가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개선되었다고 발표했다.
◆돈도 벌고 가사도 책임지길 원하는 사회분위기…성평등원칙 어긋나
여성의 32%가 배우자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여성의 54%는 정서적 폭력을 겪고 있다. 1988년에 도입된 두 자녀 정책이후 초음파기술을 이용한 성선택 낙태도 만연해있다,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은 남성보다 13%나 임금을 적게 받는다.
여성의 정치참여는 1997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베트남의 성평등화 작업이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수치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사회는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한 여성이 되기를 원한다. 여성은 돈도 벌어야 하고, 가정사도 책임지고, 더 많은 교육도 받고, 자기경력도 계속 키워야 한다. 이 모든 과업을 완수하려면 여성은 슈퍼우먼이 되어야한다.
여성에게 부과된 어려움을 해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남성에게 출산휴가를 주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여성에게만 주는 출산휴가는 남성은 항상 일하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여성은 출산휴가로 일에서 배제되고, 경력관리에 차질을 빚어도 괜찮다는 관념으로 연결된다.
이런 관념은 성평등법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남성이 이용가능한 출산휴가는 5일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90일, 100일까지 출산휴가를 간다. 남성의 장기 출산휴가는 여성의 부담을 줄이고, 여성의 조기 직장복귀, 경력관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베트남 역사에서 여성은 주도세력이었다. 베트남의 고대사회는 모계적 전통이 강하다고 해석할 정도였다. 서기 40년 중국의 베트남 지배에 저항한 쩡 자매의 독립투쟁 DNA는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이 겪은 거의 모든 누란(累卵)의 위기에 여성은 과감히 나섰다. 일과 가정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면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그럼에도 베트남의 문화와 관습은 여전히 여성을 제약한다. 베트남 사회가 여성에게 슈퍼우먼의 역량을 계속 강요하는 것은 성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편에서 여성이 활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 100m 달리기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늦게 출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베트남을 성차별 없는 건강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석태문 박사의 칼럼은 본지와 '뉴스퀘스트'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석태문 박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