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없는 인연의 연속인 삶…귀한 줄 모르고 지나친 인연 많아
요즘 자주 들춰보는 책이 있다.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으로 고려 후기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문인 진훈과 함께 선문공안 1125칙(則)을 불경 또는 조사의 어록에서 발췌한 책으로 총 30권에 이르는 방대한 역작이다. 그 가운데 제5권은 중국 선종의 고승들이 남긴 법문 가운데 화제가 될만한 것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을 보면 벌써 40여년이 지난 인연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1981년 산과 들이 온통 붉게 물드는 가을이었다. 대학을 다니던 우리는 짱돌과 최루탄 향기를 잠시 뒤로하고, 졸업여행으로 전국의 사찰 순례를 떠났다. 첫날은 예산 덕숭산의 수덕사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은 순천 조계산 송광사로 갔다.
사하마을인 외송마을에서 산사 입구 계곡에 들어서다가 곡차 한잔하고 가자고 후배 몇 녀석을 꼬드겼다. 이 좋은 계절, 단풍을 그냥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왕 절집에 왔으니 단청불사는 치러줘야 부처님에 대한 예의이리라. 저녁 공양까지 거르고 밤이 늦어서야 객사에 몰래 들어가서도 새벽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비록 단청불사의 후유증인 입냄새를 풍겼지만 새벽 예불은 엄숙히 치뤘다. 아침 공양을 끝내고 나니, 당시 송광사 방장이신 구산(九山, 1910~1983) 스님과의 대화시간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가는 도중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서 해우소(解憂所)에 들렸다 가게 되어 일행과 떨어졌다. 볼일 다 보고 방에 들어 가니 구산스님의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들렸다. 뒷쪽엔 앉을 자리가 없어 하는 수없이 앞에 가서 앉으니, 스님은 빙긋이 웃으며 다짜고짜 한마디 던지셨다.
"그대는 어디서 오는가?" 어라, 이게 뭔 말씀인가. 뜬금없는 스님의 물음에 한순간 멍해졌다. 그때 머리 속에서 번쩍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석지현의 '선시(禪詩)'로 독서를 좋아하는 세째형이 보던 것인데 필자가 화장실에 갖다놓고 틈틈이 보고 있었다. 선시의 번역은 물론 간간히 스님들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무거워서 버리고 왔습니다."
"어디에 왔는가?"
"스님은 어디 계십니까?"
필자의 어줍잖은 선문답에 스님은 파안대소를 하더니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말을 마친 스님은 필자에게 떠나기 전에 잠깐 들르란다. 가방을 챙겨놓고 방장실에 가서 삼배를 마치고 내 딴에는 다소곳이 앉아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기다렸더니, 다른 말씀은 없이 시간나고 심심하면 아무 때나 들르라고 하시고는 눈을 감으셨다.
어리둥절해서 옆에 있던 상좌인 현묵스님을 쳐다보니 그만 나가라는 눈치를 한다. 이게 뭐야. 고작 이런 이야기 해주려고 바쁜(?) 사람 불렀나. 지도교수가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상황을 얘기했더니 슬쩍 웃었다.
그후 시간이 날 때마다 스님께 들러서 다양한 주제로 여러 얘기를 나눴다. 어느날 스님께 내 '별명'을 지어달라 했다. 사실은 '호'를 지어달라고 하려다 건방진 듯해서 별명이란 말로 대신했다. 그러자 옆에서 우리들 얘기를 거들고있던 상좌스님이 반쯤 감고있던 눈을 크게 떴다.
그때는 이름을 지어달라는게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요라는 의미인줄 몰랐다. 몇번 얼굴을 익혔다고 다짜고짜 제자로 받아달라는 말에 당사자인 스님께서는 미소만 짓고 있는데, 오히려 옆에 있던 상좌가 놀란 것이다.
미소짓던 스님은 그러자꾸나 한마디 하시곤 상좌에게 준비하라 이르셨다. 간단히, 그야말로 초간단히 셋만 있는 자리에서 수계식을 하고 '영봉(靈峰)'이란 계명을 받았다. '앞으로 마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어떤 모양새의 인간으로 될까 기대가 된다'라는 뜻이란다.
스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고 나오니 상좌스님이 이름을 지어달라는 의미를 설명해주며, 여태 이런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상경길은 스승과 제자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1983년 1월 졸업을 앞두고 대만으로 공부하러 가서 당분간 찾아뵙지 못할거란 말씀을 드리니, 스님께서 축하한다며 건강하게 공부 잘 하고 나중에 또 보자신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스님이 지어주신 '영봉'도 좋지만 좀 흔한것 같아서 마음에 안든다고 은근히 돌려서 말하자 스님은 껄껄 웃으며 한 말씀하셨다.
"민들레처럼 흔한 것이 귀한 것이여!". 이 만남을 마지막으로 스님은 1983년 12월16일 '만산상엽(滿山霜葉, 온 산의 눈꽃은)'으로 시작하는 임종게로 세속과의 인연을 마무리지으셨다.
'貴耳賤目 貴古賤今(귀이천목 귀고천금)'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본 것보다 귀로 들은 소문을 진짜로 여기며, 옛날에 일어났다는 일은 사실로 생각하고 요즘 일들은 하찮게 여긴다는 말이다.
한나라 초기의 사상가 환담(桓譚, 기원전 24~56)의 언행이 담긴 환자신론(桓子新論)에 나오는 말로 '가까이 흔하게 볼 수있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멀리 흔치 않은 것은 귀하게 생각한다'는 뜻도 내포된다. 이는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고니는 귀하게 여기고 주위에 흔한 닭은 천하게 여긴다'는 '귀곡천계(貴鵠賤鷄)'라는 말과도 통하는 말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란 속담이 있다. 옷깃이 스치는 그 순간을 굳이 시간으로 환산하면 0.013초라 한다. 현생에서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전생에서는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이라며 이를 불가에서는 '타생지연(他生之緣)'이라 한다.
인연은 산스크리트어 'Hetu-pratyaya'의 번역이다. Hetu는 어떤 결과의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출발점인 원인[因]을 말하고, Pratyaya는 그 원인을 도와 결과를 낳게 하는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緣]을 말한다. 예를들어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는 것을 '인'이라한다면, '연'은 그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인과 연이 만나면 그냥 인연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것이든 결과(果, Phala)를 맺게 되는데, 이를 인연과법(因緣果法)이라 하고 보통 줄여서 인과법(因果法)이라 한다. 인과 연이 있으면 반드시 과가 있고, 과가 있다는 것은 인과 연이 만났다는 것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를 줄여 연기법(緣起法)이라 하는데 '인과 연에 의존하여 생겨나는 법칙'이라 할 수있다. 다시 말하면, 연기법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돌이켜 보면 지난 시절에는 귀한줄 모르고 지나친 수많은 인연이 있었다. 지나고 나니 그 귀중함이 오히려 배가되는 인연이다. 부모형제를 포함한 식구들, 인생의 스승들, 50여년 한결같은 친구들과 끈끈한 덕수궁 동료의 인연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건 그야말로 크나큰 행운이며 행복이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인연 속에 살고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2019년말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 이야기'를 펴내기 시작해서 현재 9권을 펴냈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