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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60) ‘재계의 부도옹’, 정인영 HL그룹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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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60) ‘재계의 부도옹’, 정인영 HL그룹 창업자
  •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전 SK그룹 사장)
  • 승인 2024.08.0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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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지상주의로 기계 전문그룹 성장 토대 놓아
- 뇌졸중에 ‘병을 이기는 것도 사업’…휠체어 경영
- ‘많은 사람이 넘어진다. 나도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을 뿐‘
정인영 한라그룹(현 HL그룹) 회장은 형님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와 함께 1962년 현대양행을 설립해 한국 중공업의 씨앗을 뿌렸으며, ‘생존의 길은 오직 기술뿐’이라는 기술지상주의로 오늘날 HL그룹이 기계전문그룹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놓았다. (사진=HL그룹)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바로 손아래 동생이다. 그는 일본 아오야마학원(青山学院)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다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형 정주영 회장의 권유로 현대건설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한국전쟁 중에 미군 공사를 수주하는 일부터 시작해 현대건설 대표이사를 15년간 맡으며 현대를 굴지의 건설사로 키웠다.

특히 빼어난 영어실력으로 현대건설의 해외사업은 거의 정인영 회장이 도맡아 처리했다할 수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만공사 입찰건 등 중동 진출을 놓고 정주영 회장과 의견 차이를 보이다가 1976년 사장직을 내려놓았다.

현대건설 사장에서 물러난 정인영 회장은 현대양행 경영에 전념했다. 정 회장은 일찍이 AID(국제개발처) 차관을 얻기위해 미국에 갔다가 제철부터 플랜트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진 보스턴, 피츠버그의 첨단 기계공업 현장을 보고 ‘중공업 개발없이 경제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1962년에 설립한 것이 현대양행이다.

현대양행은 처음에는 포크나 나이프 등 양식기류를 생산했으나, 1968년 해운사업부를 신설하고 이듬해부터는 자동차 생산에 주력해 프레스 부품들과 히터, 엔진 라디에이터와 같은 기능성 부품들로 제품라인을 확대했다.

1971년에는 아메리칸 호이스트 앤 데릭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트럭크레인을 국내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1974년에는 포크레인, 불도저, 모터그레이더 등의 건설중장비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한라'라는 상표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1976년에는 창원공장(현 두산중공업) 건설을 시작했다. 창원공장 건설계획은 수력•화력•원자력 발전용설비 제작에서부터 제철•석유화학•시멘트•해수담수화 설비까지 총망라하는 대공사였다.

1997년 한라그룹 웨일즈 중장비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정인영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정 회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나 ‘병을 이기는 것도 사업’이라며 휠체어를 탄채 경영을 이끄는 강인함으로 ‘재계의 부도옹(不倒翁)’으로 불리웠다. (사진=HL그룹)  

그러나 곧 예상치못한 시련이 닥쳤다. 1980년 신군부는 중화학공업의 난립을 재편하겠다며 현대양행 창원공장과 군포공장을 내놓도록 했다. 세상 사람들 모두 그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에게 역경은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정 회장은 18명의 임직원과 함께 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는 먼저 현대양행의 안양공장 상호를 '만도기계'로 바꾸었다. 회사명 만도는 정 회장의 재기의지를 담은 '인간은 할 수있다(man do)'는 뜻과 '1만가지 도시'를 뜻하는 말로 정 명예회장이 직접 지었다.

그는 한라그룹과 만도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기술확보 뿐이라고 생각했다. ‘기술로 승부하라'는 기술지상(技術至上)주의로 1984년 만도기계연구소를 개설해 자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평택•경주•문막•아산•익산 등지에 부품별 전문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1986년에는 미국 포드사와 공동으로 한라공조를 설립해 자동차부품 생산의 전문화를 추구했다. 1980년대 자동차산업 호황과 함께 만도기계는 빠른 성장을 거듭했다.

정 회장은 1989년 과로 때문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지만 "병을 이기는 것도 사업"이라며 다시 일어섰고, 휠체어에 앉아 그룹경영을 진두지휘했다. 병마도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을 수 없던 것이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휠체어 부도옹', '재계의 부도옹(不倒翁)'이란 별칭을 붙여주었다. 

그는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행운아다. 많은 사람이 넘어진다. 나도 넘어졌고 다시 일어섰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어떠한 시련에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던 정인영 회장의 뚝심과 경영철학은 재계순위 57위(2024  공정거래위 발표기준) 한라그룹(2022 HL로 개칭)의 저력으로 남아있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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