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끄러운 성공보다는 좋은 실패 택해야’
- 지위 이용한 특권, 요행 바라지않아…많은 기업인들이 존경
두산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장수 기업이다. 창업주 매헌(梅軒) 박승직이 1896년 서울 종로4가 배오개(현재의 연지동) 인근에 포목점인 '박승직 상점'을 연 이래 약 120년을 이어오고 있다.
매헌의 장남인 박두병 회장은 박승직 상점에 출근하면서 최초로 출근부 제도와 상여금 제도 등을 도입했으며, 1946년 두산상회로 이름을 바꾸고 무역업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이후 음료산업부터 소비재•건설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13개 회사를 세워 매출을 무려 349배 성장시켰다.
한국전쟁중인 1952년 그는 지배인으로 일했던 일본 쇼와기린맥주를 인수해 동양맥주(현 오비맥주)를 설립, 우리나라 음료산업을 개척했다. 이어 1953년 두산산업, 1960년 두산건설을 설립해 사업영역을 넓히고 근대적 경영체계를 확립했다. 1969년에는 국내기업 최초로 '전문경영인체제'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합리적인 경영과 직원들을 위한 복지에 힘쓴 박 회장은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다”, “기업의 미래는 사람에게 달렸다"라며 인간중심의 경영철학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오늘날 두산그룹의 캠페인은 바로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두병 회장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결코 지름길을 찾지않았다. '한 말(斗) 한 말 쌓아 태산같이 이룬다'는 뜻을 가진 사명처럼 정도를 걸으며 기업을 키워나갔다.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를 택하겠다면 그 생각이 옳습니다. 좋은 시도가 있는 실패는 한 번의 기회를 잠깐 놓치는 것뿐이지만 부끄러운 성공은 수많은 기회를 모두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은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나침반 역할을 했다.
그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으로 외자도입심의위원을 맡은 박 회장이 외자유치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박 대통령은 두산이 먼저 자금을 사용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끝내 사양했다. “이익도 도의를 밑바탕으로 할 때 정당한 것이 되며 도의를 배척하는 재능, 지식, 발명은 생명이 길지 못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특권을 누리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았던 그를 당대의 많은 기업인들이 존경했으며,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박 회장은 역대 최장기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임했다.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기업체질 개선과 산업간 합리화 지침 설정 등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한국인 최초로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 회장이 되었고, 1972년에는 아시아상공회의소연합회 종신 명예회장이 되었다.
1973년 박 회장이 세 번째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하던 때는 타계하기 한 달 전이었다. 그는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기업과 국내 상공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기업과 나라경제를 위해 열정을 쏟은 재계의 거인이었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